회사를 30년 다니다 떠나는 날, 손에 쥐어지는 숫자는 보통 1억 5,000만에서 3억 사이다. 그런데 그 숫자를 어떻게 받느냐: 일시금이냐, IRP에 묶어 두고 만 55세 이후 연금이냐: 에 따라 손에 남는 금액이 수천만 원 단위로 갈린다. 노후 30년 계획을 다룬 노후 5억 만들기가 ‘적립 단계’의 4축을 정리했다면, 이 글은 그 4축 중 ‘퇴직 그 시점’ 한 점에 집중한다. DB형·DC형의 차이, IRP 이전 의무, 일시 vs 연금 세금 격차를 한 표로 정리한다.
실무에서 자주 부딪히는 5가지 결정: DB냐 DC냐, IRP를 어디 운용사에서 받을 것이냐, 일시금이냐 연금이냐, 추가 납입을 할 것이냐, ISA 만기와 어떻게 맞물릴 것이냐: 를 한 번에 정리한다. 각각이 수백만 원 단위 차이를 만들고, 30년 누적에서 1억 단위 격차로 벌어지기도 한다. 본 글은 정책 변경 가능성이 큰 한도와 세율 대신 ‘구조’ 위주로 정리해 5년 뒤에도 골격은 유효하도록 썼다.
퇴직금·DB·DC·IRP: 한 줄로 정리
용어가 비슷해서 헷갈리지만, 4가지는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.
| 용어 | 정체 | 누가 운용? | 누구의 책임? |
|---|---|---|---|
| 퇴직금 | 회사가 주는 1년 이상 근속자 급여 | : | 회사 |
| DB형 | 확정급여형 퇴직연금 | 회사 | 회사 (수령액 보장) |
| DC형 |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| 본인 | 본인 (수익률 책임) |
| IRP | 개인형 퇴직연금 (그릇) | 본인 | 본인 |
핵심은 ‘퇴직금 = 돈, IRP = 그릇’이라는 점이다. 회사가 DB든 DC든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든, 퇴직 시점에는 그 적립금이 IRP라는 개인 계좌로 들어와 만 55세 이후 인출까지 보관된다.
대부분의 직장인이 헷갈리는 지점은 ‘DC형이 곧 IRP인가?’다. 답은 ‘아니다’이다. DC형은 회사가 매년 본인 계좌에 적립하는 ‘재직 중 운용 단계의 그릇’, IRP는 ‘퇴직 후 받는 그릇’이다. DC 적립 자산은 퇴직 시점에 IRP로 옮겨지며 그 후로는 IRP 룰을 따른다. DB형은 재직 중에는 회사 계좌에 묶여 있다가 퇴직 시점에 동일하게 IRP로 이체된다. 즉 DB·DC 모두 결국 IRP라는 같은 종착지로 모이고, 만 55세 이후의 인출 룰은 동일하게 적용된다.
DB형 (확정급여형): 평균임금 기반, 회사 책임
DB(Defined Benefit)는 ‘퇴직 시점 평균임금 30일분 × 근속연수’ 공식으로 수령액이 미리 정해진다. 회사가 적립금을 굴려서 약속된 금액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을 진다.
- 수령액: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 × 30일 × 근속연수
- 운용 주체: 회사 (사외적립 의무, 보통 은행·보험사)
- 유리한 경우: 호봉 상승·승진이 빠른 직장. 근속 후반에 급여가 가파르게 오르면 DB가 압도적으로 유리
- 불리한 경우: 임금피크제 적용. 만 55세 이후 임금이 깎이면 ‘퇴직 직전 평균임금’이 낮아져 수령액 감소
대기업·금융권·공기업의 호봉제 직군이 여전히 DB가 다수다. 한 번 입사 시 정해진 제도가 그대로 가는 경우가 많고, 회사가 일방적으로 DB→DC 전환을 시도하면 노조 협의가 필요하다.
DB의 약점은 임금피크제다. 퇴직 5~10년 전부터 임금이 단계적으로 깎이는 회사라면 ‘퇴직 직전 3개월 평균’ 자체가 낮아져 30년 호봉의 결실을 일부 잃는다. 이런 회사는 임금피크 진입 시점에 DC로 전환할 수 있는 옵션이 열려 있는지 인사팀에 확인하는 것이 표준 절차다. 한 번 DC로 전환하면 그 시점까지 쌓인 DB 적립금은 ‘그때 평균임금 기준’으로 확정 이체되고, 이후 적립은 DC 룰을 따른다.
DC형 (확정기여형): 매년 1/12 적립, 본인 운용
DC(Defined Contribution)는 회사가 매년 ‘연 임금총액의 1/12 + 알파’를 본인 IRP 계좌에 입금하고, 그 다음부터는 본인이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.
- 적립: 매년 임금총액 1/12 (보통 한 달 치 급여)
- 운용 주체: 본인 (예금·펀드·ETF 선택)
- 유리한 경우: 임금 정체 + 운용 자신감. 인덱스 펀드로 연 5~7% 굴리면 DB 대비 누적 수익이 커질 수 있음
- 불리한 경우: 운용 무관심. 원금보장형 예금에만 두면 인플레 따라가기 어려움
DC가 늘어나는 추세는 회사 입장의 이유가 크다: 미래 부채(DB)를 현재 비용(DC)으로 확정해버리는 게 회계상 깔끔하다. 본인 입장에서는 ‘임금이 더 오를지 vs 운용수익이 더 높을지’ 미래를 한 번 베팅하는 결정이다.
DC형의 가장 큰 함정은 ‘기본값 예금 방치’다. 회사가 DC로 전환할 때 기본 운용 상품이 원금보장형 정기예금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고, 본인이 운용 지시를 안 하면 그대로 30년 예금에 묶인다. 연 2~3% 예금만으로 30년 운용하면 DB 대비 수익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. DC 전환 시점에 인덱스 펀드(국내·해외 분산) + 채권 비중을 결정해 두고, 5년에 한 번 리밸런싱하는 표준 운용을 짜는 게 핵심. 가입 회사의 운용사 사이트에서 ‘운용 지시 변경’ 메뉴로 본인이 직접 비중을 바꿀 수 있다.
IRP: 퇴직 일시금을 받는 그릇
IRP(Individual Retirement Pension)는 퇴직 시 일시금이 들어오는 ‘그릇’이다. 2022년 4월부터 원칙적으로 IRP 이체가 의무화되어, 퇴직금 300만 원 이하·만 55세 이후 퇴직 등 일부 예외를 빼면 모두 IRP를 거친다. 이전에는 회사가 퇴직금을 일반 통장으로 송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, 이체 도중 ‘다른 용도 소비’를 막고 노후 자금으로 묶어 두기 위한 정책 변화다.
| 항목 | 내용 |
|---|---|
| 가입 자격 | 누구나 (퇴직 안 한 직장인도 가능) |
| 추가 납입 한도 | 연 1,800만 (연금저축 합산) |
| 세액공제 한도 | 연금저축·IRP 합산 900만 (연금저축 단독 600만) |
| 환급액 | 16.5%면 약 148.5만, 13.2%면 약 118.8만 |
| ISA 추가 공제 | ISA 만기 60일 내 이체 시 이체액의 10%(최대 300만) 별도 |
| 운용 상품 | 예금·채권·펀드·ETF (위험자산 비중 70% 한도) |
| 인출 시점 | 만 55세 + 5년 가입 |
| 중도 해지 | 16.5% 기타소득세 추징 |
IRP에는 (1) 퇴직 일시금, (2) 본인 추가 납입, (3) ISA 만기 이전 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. 본인 추가 납입 한도를 채우면 즉시 세액공제까지 챙기는 절세 그릇이 되고, 운용수익은 만 55세까지 비과세로 누적된다.
IRP 운용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‘퇴직금 이체 후 그대로 방치’다. 자동 이체된 IRP의 기본 운용 상품이 정기예금으로 잡혀 있으면 연 2~3%의 저수익으로 30년이 흐른다. 이체 후 첫 1주일 안에 운용사 사이트에서 운용 지시를 변경하는 것이 표준 절차. 위험자산(주식형 펀드·ETF) 한도 70% 안에서 본인 연령·성향에 맞춰 분배한다. 만 55세 직전이면 30~50%, 만 60세 이후면 20~30% 정도가 일반적인 글라이드 패스 비율.
일시수령 vs 연금수령: 세금 35% vs 연 5.5% 차이
가장 큰 결정은 IRP에 들어온 자산을 ‘만 55세 이후 어떻게 받을지’다. 두 길의 세금 구조가 매우 다르다.
| 항목 | 일시수령 (퇴직소득세) | 연금수령 (연금소득세) |
|---|---|---|
| 과세 방식 | 근속연수공제 후 연분연승법 누진 | 분리과세 |
| 1억·30년 근속 실효세율 | 약 5~12% | 5.5% (지방세 포함) |
| 만 70세 이상 | : | 4.4% |
| 만 80세 이상 | : | 3.3% |
| 조건 | 만 55세 이후 인출 가능 | 만 55세 이후 + 10년 이상 분할 |
퇴직급여 자체에 대한 일시금 세율은 근속 20년 이상이면 의외로 낮다. 하지만 IRP에 추가 납입한 본인 분과 운용수익을 일시 인출하면 16.5% 기타소득세가 붙어 절세 효과가 무너진다. ‘퇴직금 본체는 일시 OK, 추가 납입과 운용수익은 연금으로’가 절충 답이다. 자세한 룰은 고용노동부 퇴직급여제도 안내와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서 본인 누적 적립금까지 확인 가능하다.
또 하나 자주 놓치는 룰: 연금 수령액이 연 1,500만 원을 넘으면 분리과세(5.5/4.4/3.3%) 우대가 깨지고 16.5% 단일 세율 또는 종합과세 중 선택해야 한다(개인 추가 납입·운용수익 분에 한정, 퇴직급여 본체는 별도). 즉 IRP 잔고가 큰 사람은 ‘연 1,500만 한도 안에 인출 설계’가 절세의 출발점이다. 이 한도 룰 때문에 만 55세부터 가능하면 길게 (15~25년) 분할하는 설계가 표준이 된다.
표준 추천 흐름: 만 55세 도달 → 10년 이상 균등 분할 설정 → 매월 연금 수령. 이 방식으로 5.5% 분리과세 + 인출 시점 분산 + 운용수익 추가 누적의 3중 이점을 챙긴다. ISA 만기를 맞춰 IRP로 옮기면 ‘ISA → IRP → 연금’ 흐름까지 하나로 이어진다 (자세한 룰은 ISA·연금저축 정리 참고).
구체 시나리오로 비교해 보자. IRP에 1억 5,000만이 쌓인 만 55세 직장인 A씨.
| 인출 방식 | 매월 수령액 (10년) | 적용 세율 | 10년 누적 세후 |
|---|---|---|---|
| 일시 수령 (퇴직금 본체만) | 1.5억 일시 | 약 7~10% (근속 30년) | 약 1.35억 |
| 10년 균등 분할 (IRP 운용 4% 가정) | 약 152만/월 | 5.5% 분리 | 약 1.72억 |
| 20년 균등 분할 | 약 91만/월 | 5.5% (만 70세부터 4.4%) | 약 1.95억 |
단순 일시금 대비 10년 분할이 약 3,700만, 20년 분할이 약 6,000만 더 많은 세후 누적액. 운용수익 차이와 분리과세 효과의 합이다. 단, 분할 인출은 IRP 잔고 운용에 의존하므로 운용 자산 비중을 너무 보수적으로 짜면 누적액이 줄어들 수 있다. 만 55~65세 사이는 위험자산 30~40%, 65세 이후는 20% 이하로 단계적으로 보수화하는 ‘글라이드 패스’가 표준 운용.
한·미·일 퇴직금·연금 그릇 비교
| 시장 | 회사 부담 | 개인 운용 그릇 | 핵심 절세 |
|---|---|---|---|
| 🇰🇷 한국 | DB/DC 퇴직급여 | IRP (의무 이전) | 연금수령 5.5% 분리 |
| 🇯🇵 일본 | 退職一時金 + 企業型DC | iDeCo (월 23,000~68,000엔) | 退職所得控除 + 1/2 분리과세 |
| 🇺🇸 미국 | 401(k) 회사 매칭 (3~6%) | Rollover IRA (60일 룰) | Direct Rollover 비과세 이전 |
세 시장 모두 ‘회사 부담 + 개인 운용 그릇 + 인출 시점 절세’ 3층 구조다. 한국은 IRP 이전 의무 + 연금수령 분리과세가 가장 강한 조합, 일본은 退職所得控除 + 1/2 분리과세로 일시금 우대가 두텁다. 미국은 401(k) 적립금을 퇴사 시 Rollover IRA로 직접 이전(Direct Rollover)하면 비과세, 60일 안에 처리하지 못하면 일반소득세 + 10% 조기인출 페널티가 붙는다 (만 59.5세 미만).
미국은 SECURE 2.0 법(2023)으로 RMD(의무 인출) 시점이 73세 → 75세로 늦춰졌고, 일본은 60대 후반 정년연장과 함께 iDeCo 가입 가능 연령이 70세까지 확대되는 추세다. 한국도 만 65세 국민연금 수령과 함께 연금 그릇 통합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: 이 부분은 국민연금 만 65세 정리에서 별도로 다룬다.
한국 IRP의 또 하나 독특한 룰은 ‘ISA 만기 이전 추가 세액공제’다. ISA 3년 만기 시 자금을 IRP로 옮기면 이체 금액의 10%(최대 300만 원)가 일반 IRP 한도와 별도로 추가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. 5년에 한 번 ISA 1억을 만기 후 IRP로 이전하면 한 해 약 49.5만 원의 추가 환급이 더해지는 셈. 일본·미국에는 없는 ‘세제 우대 그릇 사이의 통로’ 정책이다.
도구: 일시금 vs 연금 시뮬레이션
interest 도구에 ‘퇴직 일시금 1.5억, 만 55세 IRP 보관, 연 4% 운용, 만 65세 시점부터 10년 분할’ 시나리오를 입력하면 매월 수령액과 누적 세후 금액이 비교 패널에 한 화면으로 나온다. 같은 1.5억이라도 일시 수령 시점·연금 수령 기간·운용수익률에 따라 손에 남는 총액이 수천만 원 단위로 달라진다. 도구의 비교 패널 3칸을 ‘일시금 즉시’, ‘만 55세 10년 분할’, ‘만 65세 20년 분할’로 나란히 두고 같은 1.5억의 30년 후 모습을 보면, 어느 경로가 본인 라이프스타일에 맞는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.
퇴직을 1년 앞두고 점검할 체크리스트도 짧게 정리해 둔다. (1) 회사 퇴직급여 제도(DB/DC)를 인사팀에 다시 확인, (2) IRP 계좌 운용사를 미리 선택해 개설(은행·증권사 비교: 수수료와 운용 상품 폭 차이가 큼), (3) 본인 추가 납입 누적과 ISA 만기 일정 점검, (4) 만 55세 이후 인출 방식(일시·10년·20년)을 미리 시뮬, (5) 건강보험 피부양자·국민연금 임의계속 가입 가능성 등 주변 제도도 같이 살핀다. 이 5가지가 모두 정리되어 있으면 퇴직 당일 ‘서류에 사인하라’는 압박 속에서도 자기 결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.
퇴직 시점의 결정은 30년 누적 적립의 마지막 한 걸음이지만, 그 한 걸음에서 세금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다. 회사가 DB든 DC든 정해 놓았다면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, IRP 이체 후 인출 방식은 본인이 100% 결정한다. ‘일시금으로 한 번에 받아 다른 자산에 굴리겠다’는 흔한 충동을 견디고, 만 55세 이후 10년 분할이라는 표준 경로를 택하는 것만으로도 1억 단위 자산에서 1,000만 원대 절세가 가능하다. 퇴직 시뮬레이션 도구로 본인 숫자를 한 번 넣어 보면, ‘급한 일시금’과 ‘느긋한 연금’의 차이가 추상이 아닌 구체 숫자로 보인다.